1970년대를 인플레이션의 시대 (Infration era) 라고 한다.
1965–1982년대를 "The Great Inflation" 이라고도 한다.
인플레이션은 미국의 문제라기 보다 다른 국가에 더욱 큰 피해를 주고 있었다.
미국과 잘나갔던 일본은 70년대 초반만해도 인플레이션을 견딜만 했다
그러나 당시 국제유가가 폭등하며 전세계적으로 2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었다.
1. 1973년 Oil Crisis
1973∼1974년 제4차 중동 전쟁 시기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정책과
2. 1979년 Energy Crisis
1978∼1980년의 이란 혁명으로 인한 석유 공급의 부족으로 국제 석유 가격이 급등하여 전 세계가 경제적 위기와 혼란을 겪은 사건이다.
1980년대 FED 의자 폴 볼커는 "경기 둔화를 감수하면 물가를 잡을 수 있다" 라는 신념으로 80년 중반까지 기준금리를 20% 가까이 인상했다
FED의 기준금리가 20% 가까이 인상됐다는 것은 기업이나 가계의 대출 금리는 최소가 20%라는 의미가 된다.
당시 1980년대 미국 중소기업의 40% 가까지 도산했다고 한다
당시 1980년 초반의 실업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보다 높아 "대공황 이후의 최악의 실업률" 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가계, 기업이 무너지며 수요가 줄어들며 물가 하락 즉 가격의 하락을 유도했고 인플레이션과 고유가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1970년 후반의 배럴당 40달러 였던 석유가격은 1986년 초반에 10달러 수준에 도달했다. "그림 [석유 수입 가격]" 참고
그런데 기준금리가 높아지며 미국 달러가 있으면 높은 금리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달러인덱스는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수이다.
미국 기준금리가 고공행진을 하고 달러 수요가 높아지며 달러인덱스가 초강세를 나타내게 되었다.
80년대 달러가 초강세를 나타내며 달러 가치는 높아지며 달러 표시 물건의 가격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니 미국의 수출 경쟁력은 낮아지고 수입을 하면 더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살수 있게되었다.
소비자들은 미국 자동차 보다 세련되고 가격이 저렴한 독일과 일본 제조사의 자동차를 선호하게 되었다.
달러 강세에 미국 제조업 수출은 어려워지고 무역적자가 심각해지게 되었다. 무역수지가 적자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결과로 닿아랐다
1981년 집권한 레이건대통령은 강한 달러 를 표방하며 조세감면을 통해 경기 활성화를 도모했다
재정정책으로 돈이 풍부해진 가계는 강달러에 따라 수입물가가 낮아지며 수입이 크게 늘어나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대폭 확대됐다.
1980년대 미국은 경기 부양 정책으로 재정 적자가 심해졌고 달러와 강세로 일본, 독일 같은 수출국에서 수입물가가 낮아지며 수출 제조업이 무너지며 무역적자가 심해졌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함께 발행하면 이를 "쌍둥이 적자" Twin deficit 라고 한다.
미국은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 당시 서독과 일본의 대미 무역 흑자 문제를 탓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1985년 9월 미국에서 있었던 G5 정상회담에서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서독과 일본에 압력을 가하고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것이 "플라자 합의" 이다.
'Industr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금통위에서 금리인하는? (2) | 2024.11.20 |
---|---|
[역사] 플라자 합의 (1) | 2024.11.20 |
한국신용데이터(KCD), 김동호 대표 (2) | 2024.11.03 |
10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를 할까? (0) | 2024.10.10 |
[경제지표] 미국 비농업고용지수 (0) | 2024.10.08 |
댓글